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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두려운 장애는 사람들 마음

[2002-09-03]
 
 
 
장애인도 버스를 타고 싶다 잰 손놀림으로 휠체어를 움직이는 그의 손은 뻑뻑한 굳은살로 가득하다. 휠체어 바퀴가 발걸음을 대신한 지 19년…. 노들장애인야학교 교장이자 장애인이동권연대회의 공동대표인 박경석(42)씨는 지난날을 회상할 즈음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라는 수식은 결코 20년 가까운 세월을 얕잡아 봐서가 아니다.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온 그였기에 지난해부터 장애인이동권 확보를 위해 시위를 하고, 1999년 장애인인 배복주씨와 결혼하고, 90년 장애인을 위한 야학 문을 열고, 88년 처음 직장을 다니며 사회에 발을 내딛던 긴 세월이 ‘한 순간’ 같다. 물론 19년 전 행글라이더 사고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악몽 같은 잠에서 깬 뒤 5년 정도 집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던 비루한 삶도 이미 ‘지난 일’이라는 단어 하나에 묶인다. 박경석 씨는 얼굴에 박제된 듯한 쓴웃음을 몇 차례 되풀이할 뿐이다. “인생 망쳤다고 생각했죠. 꿈에서는 걷는데, 눈을 뜨면 움직이지 못하고…, 통과의례처럼 죽을 방법을 찾았어요.” ‘못 죽어서 살았다’라고 내뱉기도 했지만, 박경석씨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쥐어준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턱이 높은 아파트에서 외출을 시도하고, 사람들과 만나기를 계획한 것도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그를 배려하던 어머니와 형제 때문이었다. 자원봉사로 토요일 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일요일 교회에 데려다주던 이도 지금의 형수가 되어 있다. ‘가족의 힘’을 그는 의심하지 않는다. 함께 장애인 인권 운동을 하며 만난 아내 배복주(31)씨와는 5개월 만에 결혼했다. 바쁜 일과로 자정이 넘어서야 서로 얼굴을 맞대면서도, 경제적인 책임을 못 지는 남편이기에 아내에게는 늘 빚진 듯 미안하고 고맙다. 아내는 미의 기준으로, 가부장제 가정 안에서의 가사노동 책임자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신체적 장애로 더욱 소외되고 차별받는 여성 장애인의 심각한 문제에 대해 인식시켜준 친구이기도 하다. “장애를 겪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장애 문제에 깊은 사고를 보태지 못했을지 모르죠.” 1년 반 동안 성남 장애인복지회관에서 직장 생활을 꾸려나가던 그가 본격적으로 장애인 야학에만 전념한 것도 장애인이라는 깊은 자의식이 있었기 때문. “돈벌이에 대한 미련은 없었어요.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장애인들이 일상적으로 모여서 이야기하며 같이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습니다. 단순히 장애인에게 배울 기회만 제공하자는 차원은 아니었습니다.” 박경석 씨는 거리에서 장애인을 보고 ‘환자가 왜 나돌아다니느냐’는 식으로 바라보는 편견에 대항하고 싶었다. 선입견과 맞서 싸워야 했지만 아무런 힘도 없었다. 장애인 야학은 교육과 더불어 차별 문제를 공유하고 변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출발선이었다. “지금 구의동 노들장애인야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35명 정도예요. 학생이거나 직장인인 선생님들은 회비까지 거둬가며 순수하게 봉사하고 계시죠. 고마울 따름입니다.” 교사회비와 후원금만으로 야학을 운영한다는 것도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닐 텐데, 박씨의 아쉬움은 다른 데 있다. 전화(02-446-9101)나 홈페이지(www.nodl. or.kr)를 통한 학생들의 문의가 늘지 않는 것이다. 장애는 차이일 뿐, 절망보다 희망으로 극복 “장애인이동권연대에 힘을 쏟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해 1월 21일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벌어진 장애인의 리프트 추락사고였지만, 그 이전부터 몸으로 느끼던 문제였습니다. 장애인들이 야학에 다니고 싶어도 이동이 어려워 공부를 포기하고, 몇몇 학생 중엔 리프트에서 떨어져 다친 사람도 있었거든요.” 그는 “버스나 지하철은 대중교통인데, 장애인은 대중이 아닌가요?” 하고 묻는다. 보건복지부에서 145만명(민간 장애인단체에서는 450만명)으로 추산하는 장애인들이 수용 시설이 아닌, 사회 속에서 자립해 생활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급선무다. 그들이 바라는 건 나사렛 예수의 기적이 아니다. 그저 목적을 가지고 통행할 때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일 뿐이다. “장애인이 시위 현장에 나선 것을 두고 과격하다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상대적인 평가죠. 모금함과 자선냄비의 이벤트성 행사나 ‘장애인을 도와줍시다, 사랑합시다. 나눕시다’고 외치는 언론도 동정적인 시선에 머뭅니다. 그런 구조적 문제에서 오는 차별을 얼마나 절박하게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의 차이에 따라 시위를 바라보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겁이다.” 장애인이 지하철에서 리프트를 타고 움직이는 데는 20분이 넘게 걸린다. 그 느린 리프트에서 떨어지고 죽는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박경석씨는 ‘이동권 투쟁’에서 지하철의 모든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하고, 장애인도 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저상(底床)버스를 도입하자고 외치고 있다. “자본이 문제예요. 신체적 장애로 차별받는 이들에게 국가는 과연 얼마만큼의 돈을 투자하고 배분할 것인가 하는 거죠. 장애인에게는 지금까지 시혜와 동정의 떡고물 정도가 주어졌어요. 사회적 환경을 함께 변화시킬 가치를 못 느끼기에 정책이 실현되지 않는 것일 테죠.” 그 사이 제도적 변화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90년 ‘장애인고용촉진법 및 직업재활법’이 만들어졌고, 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도 제정됐다. “그 정도도 ‘감지덕지’라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내용적인 변화가 아닌 양적인 변화만으로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박씨는 최근 장애인자립생활운동에 대한 국제세미나차 7박 8일간 일본에 다녀왔다. 도쿄 근방에 머물렀던 그는 지하철로 움직였는데 단 한번도 불편한 적이 없었다. 역무원은 장애를 확인하고 안내를 도맡았고, 일반 시민들의 시선도 자연스러웠다. 2000년부터 도입한 저상버스가 의무적 도입 추세인데다가, 자원봉사자가 아닌 국가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활동보조인들이 장애인을 돕는 일본의 ‘부유함’에 여러 차례 눈이 갔다. 물론 경제적 부만이 아닌 정신적·문화적 부였다. “안 다치는 게 좋겠지만, 누구라도 장애를 겪을 수 있습니다. 차이일 뿐이에요. 돈이나 사랑 때문에 절망하듯, 신체적 장애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위기죠. 신체 장애를 가졌다고 편견 속에 스스로 파묻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작은 차이 때문에 차별하는 사회가 문제니까요.” 그에게 언제쯤 좋은 사회가 될까 하고 질문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박경석 씨는 ‘만들어 가야 할 것’을 믿기 때문이다. 더러 망치로도 깨부술 수 없는 마음의 벽과 부딪히면 암울해지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를 묻자 그는 선뜻 대답했다. “사실은 지금이 제일 힘들어요. 지난 일은 다 해결됐기 때문에 시련일 이유가 없죠.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

박경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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