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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세상을 바꾼 여성들...시리즈 -6

신사임당. 예술가이자 현모양처의 대명사 

신사임당은 이율곡의 어머니. 본명은 신인선...( 1504~ 1551) 그는 강릉 북평에서 태어나 성장하였으며, 19세에 이원수(李元秀)와 결혼. 셋째 아들인 이율곡을 강릉에서 낳았다. 

신 사임당의 그림들...벌나비 꽃과 자연

師任에서 는 스승을 의미 그리고 師任은 중국 나라 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에서 따옴. 신사임당(申師任堂)의 본명은 신인선이다. 사임당(師任堂)은 당호(堂號)이다. 당호란 본채나 별채의 이름이다. 그리고 당()은 안주인이 기거하는 집안의 한 건물을 말한다. 신사임당이 강릉 오죽헌에서 자신이 거처하는 곳의 당호를 지었는데,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신사임당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사임당은 그의 호()가 아니라 그가 거처하던 건물의 이름이다. 師任에서 는 스승을 의미한다. 그리고 師任은 옛날 중국 나라 文王의 어머니 태임(太任)에서 따왔다. , 신사임당은 太任을 스승으로 본 받고 싶다는 의미에서 사임이라고 한 것이다. 공자(孔子)나라 文王시절을 이상향으로 보고, 그 문물을 존중하였다고 한다. 특히 태임의 태교(胎敎)를 본받고 싶어 하였다. 태임의 성품은 단정하고 성실하며 오직 덕()을 실행하였다고 한다. 그가 문왕을 임신해서는 눈으로 사악(邪惡)한 빛을 보지 않았고, 귀로는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임당은 결혼 몇 달 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 왔다. 이후 시가(媤家)인 파주 율곡리에서 생활하다 이 시기에 셋째 아들인 이율곡을 강릉에서 낳았다. 38세가 되던 해에 시집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서울 청진동에서 살다 48세가 되던 해 삼청동으로 이사 그 해 남편이 평안도로 부임하기 위하여 아들과 함께 갔을 때, 혼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셋째 아들인 이율곡에 이어 한국은행이 고액 신권화폐의 모델로 신사임당을 선정하였을 때, 여성계는 "현모양처"라는 家父長的 사회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사임당은 현모양처라기보다 가부장사회를 거부한 여권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할지 모른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는 신부집 본채 뒤에 서옥(壻屋..사위집)이라는작은 집을 짓고 혼례를 치른 뒤에도 사위가 서옥에 살면서 아이를 낳아 장성한 뒤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처가에 머무는 동안 사위는 노동력과 패물을 제공하여야 했다. 태종실록에도" 혼인 예법은 남자가 여자의 집으로 장가들어 아들과 손자를 낳아서 외가에서 자라게 했다 

조선에서도 아직 옛 풍속을 따르고 있습니다"라고예조가 보고한 내용이 있다. 이러한 혼인 풍습을 바꾼 것은 世宗과 유학자인 士大夫들이었다. 세종은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와 신랑집에서 혼인하는 중국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고, 왕실이 앞장 서 이를 실천하였다. 세종이 숙신옹주의 혼례를 中國式으로 치른지 87년이 지나 성리학적 질서가 자리 잡았던 중종17(1522)에 혼인한 신사임당은이 풍습을 거부하였다 

율곡은 후일 어머니의 행장기를 저술하였는데, 여기서 율곡은 어머니의 예술적 재능, 우아한 성품 그리고 정결한 지조 등을 소상하게 기록하였다. 사임당은 이원수가 학업을 게을리 하며 사임당 곁을 지키려 하자 나약한 남성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는 일화가 있다. 마침내 이원수는 부인을 처가에 두고 서울을 향해서 길을 떠나게 되었다.

 

여성신문(womenisnews@hanmail.net)

2018-11-15 오후 8:41:00, HIT :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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